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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의 민족운동

후니후니 | 2016.11.09 17:46 | 조회 418 | 추천 1

보천교의 민족운동 (차길진 2016-10-2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396&aid=0000412044

 

대한민국 항일독립운동사를 살펴보면 많은 독립유공자가 발굴되고 현양했지만 아직도 밝히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다. 주로 일제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독립유공자 판별의 기준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일제가 기록을 어떻게 남기는가에 따라 유공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식민통치를 위해 계획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는 이를 바로잡기도 쉽지가 않다.

1945년 11월 백범 김구는 여의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측근들에게 “우리가 정읍에 빚을 많이 졌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46년 6월 이승만은 정읍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중대발표를 했는데 이 두 사람과 정읍(井邑)은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 이후 동학정신을 계승한 민족종교 보천교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정읍에서 한때 600만 명의 신도를 가진 보천교는 비밀결사적 조직운동을 펼쳤고,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했다. 엄청난 교세로 민중의 구심점이 된 것과 비밀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을 눈치 챈 일제는 보천교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일제는 보천교가 종교로 위장한 독립단체로 인식하고 있었다.

“보천교는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여 있는 힘을 다해 동 정부를 원조하고 있으며, 동 정부의 군대는 대정13년(1924년)경 조선 내로 침입하여 모든 관청을 습격 파괴하고 관청의 공무원을 죄다 무찔러 죽이고 조선을 독립시켜...(중략)” 1923년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을 보면 이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1924년 11월 26일 일제의 관동청경무국이 일본 외무성 아세아국를 비롯해 조선경무국, 중국내 각 내무사무관 앞으로 보낸 문건에는 “근년 김좌진은 자금부족으로 부하를 해산하고 모든 활동이 불능한 상태가 되어 금번 봄 조선 내 보천교 교주 차경석과 연락하여 만주별동대로서 행동하는 일로 지난 10월 초순 교주 대표 某씨가 寧古塔에 와서 2만여 엔의 군자금을 제공함으로써 김은 이 돈으로 옛 부하들을 소집하여 三?口에 근거를 두고 포교와 무장대 편성을 계획하고 동지를 거느려 東寧縣으로 들어왔다.(중략)”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보천교와 김좌진 장군과의 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상해임시정부와 독립군, 그리고 당시 독립을 열망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보천교와 관련이 있었다. 일제는 보천교 교주 월곡 차경석을 독립운동 단체의 수괴로 단정 짓고 교단 조직을 해체하는 공작을 벌였다. 그러나 수백만 교도와 육십 방주라는 거대한 조직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탄압과 회유의 이중책을 썼으며, 월곡에게 만주로 이주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일제는 다른 한편으로 보천교를 철저하게 유사종교로 매도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의 기록이나 판결문을 보면 일제는 보천교를 식민통치에 방해되는 불경스런 단체이자 유사종교로 봤고 600만 신도를 가진 우매한 미신사교 집단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도 보천교 본소에 경찰을 상주시켜 끊임없이 감찰활동을 벌였다. 그 후 일제에 의해 월곡이 독살당하고 보천교를 철저하게 와해시킨 후에도 유사종교나 사이비종교라는 꼬리표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보천교의 민족주의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물론 보천교의 활동들이 모두 민족운동인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다른 종교들도 그러했고 보천교도 일부 친일적 행위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해방 후 정치적으로 소외되기도 했지만 보천교의 민족운동은 항일독립운동사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올바른 조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지난 8월 전북 정읍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의 학술대회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학술대회 개최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국내외에서 참여한 학술대회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일본이 남긴 자료를 가지고 독립운동여부를 판단하고 학술대회를 열어야한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보천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의 독립운동 연구들이 학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학자들의 열정만큼은 매우 뜨겁다. 다만 연구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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